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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구시쿠(御城)이야기

과거 슈리 사람들이 ‘우구시쿠(御城)’라고 부르며, 경애의 눈으로 우러러 본 슈리성.
슈리성과 그 주변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 주는 역사 에세이.

Columu

‘책봉칠비(冊封七碑)’

여러분께서는 ‘책봉칠비(冊封七碑)’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책봉칠비’란 슈리성 제2의 문인 ‘즈이센몬(瑞泉門)’으로 오르는 계단 양편에 서 있는 석비를 말합니다.

즈이센몬 바로 앞에는 ‘류히(龍樋)’라고 하는 샘물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솟아나는 물을 중국 황제의 사자 ‘책봉사’가 극찬하여 한시를 읊기도 하고 제자(題字)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것들을 석비로 만든 것이 책봉칠비라고 불리는 7개의 석비입니다. 이 류히의 물은 국왕이나 그 가족의 음료수 등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대단히 물맛이 좋았기 때문에 책봉사가 류큐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숙박처인 나하항 근처 덴시칸(天使館)까지 매일 물을 날랐다고 합니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책봉칠비는 파괴되었지만, 1926년경에 수집된 탁본 등을 참고로 복원되었습니다.

7개의 비석 중에 가장 오래된 석비는 1719(중국 원호: 강희58)년 쇼케이왕(尚敬王) 책봉부사 서보광(徐葆光)이 기록한 《중산제일(中山第一)》(그림①)로, ‘샘의 수량, 수질이 류큐 제일의 샘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후에 대해서는 표1과 같습니다.

류히(龍樋)를 칭송하는 책봉칠비는 서보광(徐葆光)부터 조신(趙新)까지 약 15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류히의 흐름은 변함이 없었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말뿐만 아니라 서적(書跡)으로도 훌륭한 책봉칠비를 지금도 끊임없이 흐르는 류히의 물소리를 들으며 음미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구바 마유미)

서기 중국 연호 역직 제자자 의미 그림
1719 강희58 쇼케이왕 책봉부사 서보광
(徐葆光)
중산제일
(中山第一)
샘의 수량, 수질이 류큐 제일의 샘이다. 그림①
1756 건륭21 쇼보쿠왕 책봉정사 전괴
(全魁)
운근석수
(雲根石髄)
산의 높은 곳 구멍에서 솟아나는 돌의 젖이다. 그림②
1800 가경5 쇼온왕 책봉정사 조문해
(趙文楷)
양곡령원
(暘谷霊源)
동쪽 끝 너머에 있는 불가사의한 샘이다. 그림③
1808 가경13 쇼코왕 책봉정사 제곤
(斉鯤)
활발발지
(活潑潑地)
물고기가 뛰어오르듯 물의 기세가 대단히 활발한 샘이다. 그림④
1838 도광18 쇼이쿠왕 책봉정사 임홍년
(林鴻年)
원원유장
(源遠流長)
샘의 근원이 멀고, 유수가 길다. 그림⑤
1838 도광18 쇼이쿠왕 책봉부사 고인감
(高人鑑)
비천수옥
(飛泉漱玉)
청아한 샘이 마치 옥과 같이 흩날리고 있다. 그림⑥
1866 동치5 쇼타이왕 책봉정사 조신
(趙新)
영맥유분
(霊脈流芬)
영묘한 수맥에서 나오는 향기가 좋은 그림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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