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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왕국 시대로 시간 여행
주차장이 있는 스이무이칸에서 슈레이몬을 지나 세계유산 중 하나인 세이덴으로 가는 길을 소개합니다
슈레이몬 / 소노햔우타키 석문 / 간카이몬 / 류히 / 책봉칠비 / 즈이센몬 / 로코쿠몬 / 니치에이다이 / 만국진량의 종
‘슈레이(守礼)’란 ‘예절을 지킨다’고 하는 의미이며, 문에 걸려 있는 편액에는 ‘수례지방(守礼之邦)’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류큐는 예절을 중시하는 나라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슈리성은 돌담과 성문이 많은 성인데, 그 중에서도 디자인상 균형이 잡혀 있고, 우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대표적인 문이 이 ‘슈레이몬’입니다. 중국풍의 패루 형식으로 건립되어 있습니다.
슈리성의 많은 성문과 건축물에는 ‘공식 명칭’ 이외에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 명칭에서 옛 류큐인의 시적인 감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슈레이몬은 예전에는 ‘슈리몬’이라고도 불렸는데, 서민들은 애칭으로서 ‘이이노아야조’라고 불렀습니다. ‘위쪽에 있는 아름다운 문’이라는 의미입니다.
1527~55년대(다이니쇼씨 4대째 쇼세이왕대)에 처음 건립되어, 1933년(쇼와8)에 국보로 지정되었지만 오키나와전투로 인해 파괴되었습니다. 현재의 문은 1958년(쇼와33)에 복원된 것으로, 그 후 지금까지 오키나와를 상징하는 관광시설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2000년의 기념 지폐인 2,000엔 지폐의 도안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류큐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건조물로, 국왕이 외출할 때 안전을 기원하던 예배당입니다. 형태는 문으로 되어 있지만, 사람이 지나는 문이 아니라 신에게의 ‘예배의 문’입니다.
문 위쪽에 걸려 있는 편액의 내용을 통해 1519년(쇼신왕대)에 지어진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야에야마 다케토미섬 출신 니시토(西塘)라는 관리가 축조했다고 전해집니다.
류큐 석조 건조물의 대표적인 것으로, 1933년(쇼와8)에 국보로 지정되었는데, 오키나와전투로 인해 일부가 파괴되어 1957년(쇼와32)에 복원되었습니다. 현재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 2000년(헤이세이12)에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슈리성 성곽 내로 들어가는 첫번째 정문으로, ‘간카이(歓会)’란 환영한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슈리성에는 중국 황제의 사자 ‘책봉사’가 초대되었는데, 이 사람들을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이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슈리성은 외곽(바깥쪽 성곽)과 내곽(안쪽 성곽)에 의해 이중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곳은 외곽의 첫 번째 문으로 별명 ‘아마에우조’라고도 합니다. ‘아마에’란 류큐의 고어로 ‘기쁜 일’을 의미합니다.
창건된 것은 1477∼1500년경(쇼신왕대)으로, 오키나와전투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1974년(쇼와49)에 복원되었습니다. 문은 돌로 된 아치형 성문 위에 목조 망루가 올려져 있습니다. 이 스타일은 후술하는 규케이몬, 게이세이몬 등과 같은 형식입니다.
문 양쪽에는 ‘시사’라는 한 쌍의 석조 사자상이 있는데, 이것은 액막이의 의미로 놓여 있습니다.
‘류히’는 용의 입에서 샘물이 솟아 나고 있는 것에서 이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 물은 왕궁의 음료수로 사용되었습니다. 또, 중국 황제의 사자인 책봉사가 류큐를 방문했을 때, 나하항 근처에 있던 ‘덴시칸(天使館)’이라는 숙사까지 매일 이곳에서 물을 날랐다고 합니다.
용 조각은 1523년에 중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약 500년 전의 것입니다.
‘책봉칠비’란 류히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7개의 비석입니다.
중국 황제의 사자로서 류큐 국왕의 즉위를 선언하기 위해 파견된 역대 ‘책봉사’들은 류히(龍樋)의 맑은 물을 칭찬하여 한시를 지어 읊고, 제자(題字)를 남겼습니다. 그 비석은 오키나와전투로 인해 파괴되어 대부분 현존하지 않지만, 1984년(쇼와59년) 발굴 조사 시에 ‘비천(飛泉)’이라는 깨진 비석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오키나와현립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던 ‘수옥(漱玉)’이라는 비석의 나머지 반인 것이 판명되어 당시 화제가 되었습니다. ‘비천수옥(飛泉漱玉)’이란 맑은 샘이 마치 옥과 같이 사방으로 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잔존하는 7개의 비석은 탁본을 바탕으로 복원되었으며, 제자 작성자와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즈이센(瑞泉)’이란 ‘훌륭하고 성스러운 샘’이라는 의미입니다.
문 앞 오른쪽에 있는 샘물이 ‘류히(龍樋)’라고 불렸는데, 거기서 연유하여 이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곳은 제2의 문으로, 별명 ‘히카와우조’라고도 합니다.
‘히(樋)’는 강이나 샘에서 물을 끌어오는 긴 관 또는 도랑 혹은 지붕의 빗물을 받아서 지상으로 흘려보내는 장치 등을 가리킵니다. 한편, 오키나와에서는 우물이나 샘을 모두 강(카와 또는 카)이라고 표현합니다. ‘히카와’란 이러한 표현과 맞춘 말로 ‘휘자가’로도 발음합니다.
1470년경에 창건되어 오키나와전투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1992년(헤이세이4)에 복원되었습니다. 문 양쪽에는 한 쌍의 사자 석상이 있습니다. 이것도 액막이의 의미로 놓여 있습니다.
즈이센몬은 앞서 본 아치 모양의 석문인 간카이몬과 달리 쌍벽의 문 위에 직접 망루가 올려져 있습니다. 이 타입의 누문(야구라몬)은 일본 본토의 성문에서도 볼 수 있는데, 망루 중앙의 ‘서천(瑞泉)’이라고 하는 편액이 류큐 특유의 독특한 멋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코쿠(漏刻)’란 중국어로 ‘물시계’라는 의미입니다. 이곳은 제3의 문으로 별명 ‘가고이세우조’라고도 합니다.
당시 신분이 높은 관리는 가마를 타고 슈리성에 들어왔는데, 고관이라도 국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곳에서는 가마에서 내렸다고 하여 그렇게 불렸습니다. 창건 시기는 15세기경입니다.
문 위의 망루에 수조를 설치하고, 물이 넘치는 양으로 시간을 측정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시각을 측정하면 담당 관리가 이곳에서 북을 치고, 그것을 들은 다른 관리가 아가리노아자나와 이리노아자나 및 우에키몬에서 동시에 큰 종을 쳐서 성내 및 성밖에 시각을 알렸습니다.
이 ‘로코쿠(漏刻)’ 제도에 대해서는 1456년 조선의 기록에 ‘(류큐의 그것은) 우리나라의 것과 똑같다’고 적혀 있습니다.
‘로코쿠몬(漏刻門)’의 정면에 놓여 있는 것은 ‘니치에이다이’라고 하는 해시계입니다. 당시도 이 곳에 놓여, 물시계의 보조적인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1739년에 기존 로코쿠(물시계)가 불완전하다고 하여, 처음으로 니치에이키를 제작해 설치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이 시간 제도는 1879년(메이지12) 폐번치현(번을 폐지하고 현을 설치)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종은 역사자료에는 1458년에 슈리성 세이덴(正殿)에 걸려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설치 장소가 불분명하여 우선 이곳에 설치되었습니다.
오키나와현립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는 ‘만국진량의 종’의 복제품입니다. 종에는 ‘류큐국은 남해의 아름다운 나라이며, 조선, 중국, 일본 사이에 있고, 배를 이용해 만국의 가교 역할을 하며 무역을 통해 번영한 나라이다.’라는 내용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당시 해양 왕국으로서의 늠름한 기상이 나타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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